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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산다 3"에서 안정환과 김남일이 히딩크 감독을 만나러 에인트호번 구장에 들어서자, 히딩크감독이 관중석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를 가진 히딩크는 안정환과 김남일이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을 이리저리 찍자 머플러로 얼굴을 냅다 뒤집어쓴 것인데요, 이에 김남일이 "여전해, 여전해" 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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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근황 한국 4강

이어 안정환이 "아버지" 라고 외치며 먼저 다가가자, 히딩크는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안정환이"라고 친근하게 불렀습니다. 또 김남일한테도 "김남일이"라고 불러주며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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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근황 한국 4강

아래에서는 히딩크의 근황과 2002년 월드컵 4강신화, 그때의 히딩크 감독과 박항서 감독의 인연, 그리고 히딩크 감독이 발굴해 낸 인재 박지성과의 일화, 마지막으로 히딩크의 유명한 명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히딩크가 한국 감독으로 온 이유 

히딩크는 세계 최고의 명문 프로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취임까지 했지만 계속되는 저조한 성적으로 인하여 7달만에 경질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하위권에 있던 다른 팀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지만, 여기서의 성적도 처참했습니다. 연단 실패로 인해서 2000년 즈음 히딩크는 서서히 한물 간 감독으로 취급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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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근황 한국 4강

 

히딩크 감독이 계속되는 악재에 비참함을 느낄 무렵 , 한국 축구협회에서 히딩크를 감독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16강에 한번도 오르지 못한 한국을 맡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감독으로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한 번도 16강에 오르지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또 안 좋은 성적이 나오게 된다면 감독으로서 완전히 퇴출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을 설득했던 말이 , "한국 대표팀 말고는 당신이 갈 곳은 더이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히딩크는 2가지 조건을 걸고 한국 대표팀을 맡게 됩니다. 

첫째, 강팀과 친선 경기를 하기 위한 파격적인 예산 확대, 둘째, 내가 원할 때는 리그 도중이라도, 언제든 선수들을 국가대표 훈련으로 부를 수 있게 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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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4강의 주역 히딩크 

2002년 6월 , 온국민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어나와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첫 경기는 유럽의 강호중의 하나인 폴란드였는데요,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역사적인 첫승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200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월드컵 성적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16강 본선 진출은 커녕 월드컵에서 한 번도 1승을 거두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한국을 히딩크 감독이 4강까지 올려놓았으니 , 우리나라는 2002년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히딩크 근황 한국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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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히딩크 근황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뒤, 히딩크는 다시 두번째 전성기를 맞아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다시 한번 복귀하였고, 4년간 팀을 3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이후 호주, 러시아 감독을 맡으며 맡는 팀마다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면서 "히딩크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아 FA컵 우승을 견인하는 기록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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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근황 한국 4강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4년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해서 제대혈 줄기세포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서 수술받고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간 히딩크 감독은 2022년 다시 한국으로 와서 두번째 무릎 수술을 받게 됩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은 "5일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4. 히딩크와 박항서 감독의 인연

지난 14일 안정환 감독이 2002년 당시의 코칭스태프를 그리워하는 히딩크 감독을 위해 박항서 감독을 네덜란드로 초청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박항서 감독의 뜻밖의 등장에 놀란 히딩크 감독은 버선발로 달려 나갔는데요, 그립던 얼굴을 마주하고 20여 년 전처럼 포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안정환 감독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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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는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던 히딩크 감독은 "박항서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 성공은 없었을 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던 박항서 감독은 결국 눈물을 터트리더니 다시 한번 히딩크 감독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또한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해 준 안정환 감독에게도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오랜 기간 히딩크 감독을 만나지 못했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에 안정환 감독을 졸랐던 유쾌한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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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영웅 히딩크, 박항서, 안정환, 김남일의 특별한 시간이 공개될 "뭉쳐야 산다3" 는 14일 오후 7시 50분에 방송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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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히딩크와 박지성 일화

두 사람의 인연은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위해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되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의 축구계에 있었던 나이별 서열문화를 없애고 실력으로 평가받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선수들의 위계질서를 없애기 위해서 후배던, 선배던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게 시켰습니다. 1초를 다투는 경기 장 안에서의 긴박한 커뮤니케이션도 존댓말을 쓰다보니 효율적으로 경기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죠.

히딩크 근황 한국 4강

이때 있었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식사 시간 도중 막내였던 이천수 선수를 불러서 최고참인 홍명보 선수한테 가서 "명보야 밥먹자" 라는 반말을 시킨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후배 간의 반말을 쓰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이 되었고, 이천수, 박지성 등 어린 선수들이 선배들의 위계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딩크 근황 한국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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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히딩크 감독은 나이는 어렸지만 박지성의 공격적인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를 측면 공격수로 기용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월드컵 직전에 펼쳐진 강호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박지성 공격수 기용은 결국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박지성은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추갈과의 경기에서 이영표의 오른발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아낸 후 오른발 터치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왼발 슈팅을 때려 결승골로 마감했습니다. 이어 박지성은 골을 넣자마자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박지성의 이 골은 대표팀의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 짓는 득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4강 신화를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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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선수로서 둘의 인연은 월드컵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요, 2002~2003년 시즌부터 네덜란드에 아인트호벤의 지휘봉을 잡은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박지성과 이영표를 2003년에 아이트호벤으로 영입하였습니다.

 

박지성은 네덜란드 첫 시즌 적응기를 거친 후에 팀의 핵심 공격수로 발돋움하였고, 히딩크 감독과 함께 리그 우승과 유럽축구 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6. 히딩크 명언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럽 축구 강국을 꺾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했던 명언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명언이 있지만 제일 유명한 명언은 "나는 아직 배고프다"입니다. 

히딩크 근황 한국 4강
히딩크 근황 한국 4강

✨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이를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 내 임무는 경험과 지식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것뿐이다. 

✨ 나는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 

✨ 여론을 수렴하다 보면 내가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 있다. 나는 오로지 나의 길을 간다. 

✨ 나는 수학자가 아니라서 확률은 모른다. 지금 16강의 가능성을 50%로 생각하고, 남은 50일 간 매일 1%씩 확률을 높여나가 개막 때는 100%로 만들겠다. 

 

✨ 약팀과의 승수 쌓기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려운 길을 택했다. 한국 축구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 

✨ 우리는 반란의 주인공이길 바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기사에만 내 이름이 실렸는데 최근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문에서 내 이름이 인용되는 것으로 듣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작은 독재자"로 만족한다. 

✨ 판소리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것이라면 존중해야 한다. 

✨ 달리는 말에 채찍질도 좋지만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 많이 맞아봐야 겁이 없어지고 배짱도 생기기 때문이다. 

 

✨ 내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선수는 똑똑한 선수다. 경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멍청한 선수'가 되지 말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판단력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 한국 사람들은 규정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 한국 관계자들의 진지하고 성실한 접근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큰 보람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국이 경기에 지기는 했지만 한국민의 축구에 대한 애착심에 깊은 감명을 ㅂ다았다. 

✨ 만약 한국선수들에게 대뜸 나무에 올라가라고 지시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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